백석(白石)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山)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十年)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 절의 마당귀에 여인이 머리 오리가 눈물 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지은이 : 백석(白石)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율격 : 내재율
성격 : 애상적. 서사적, 감각적, 회상적, 현실 반영적
표현 : 감각적 어휘의 구사. 시상의 절제와 압축. 직유법,
어조 : 회상적
심상 : 비유적
구성 : 역순행적 구성
1연 여승과 나와의 오랜만의 대면
2연 처음 만났을 때의 여인의 모습
3연 그 동안의 여인의 비극적인 삶
4연 여승이 되기 위해 삭발하는 여인의 모습
제재 : 한 여자의 일생
주제 : 가족 공동체의 붕괴로 인한 한 여인의 비극적인 삶
출전 : <사슴>(1936)
내용 연구
여승[우리 민족 혹은 민중]은 합장[(合掌) : 부처에게 배려할 때 두 손바닥을 마주 합침]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취나물의 일종)의 내음새(냄새)가 났다.[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 이미 속세의 번뇌를 잊은 듯한 여승의 모습을 감각적으로 형상화한 시구이다. / 후각적 이미지]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처음이 아님을 암시] 늙었다.[옛날의 쓸쓸한 표정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 소설로 재구성한다면 1인칭관찰자 시점이 적절함]
나[서술자와 같은 역할]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여승의 운명적 삶에 대한 안타까움 / 쓸쓸한 여인의 모습을 보고 슬픔을 느낌]
평안도의 어느 산(山) 깊은 금덤판(금광의 일터, 금전판)
나는 파리한(몸이 몹시 여위거나 핏기가 없고 해쓱한) 여인[식민지 치하의 우리 민족을 암시]에게서 옥수수를 샀다.[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 나와 여인의 첫 만남이다. 금광으로 일 나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찾으려 옥수수 행상을 하면서 전국 곳곳의 금점판을 떠도는 여인과의 만남이다]
여인은 (고생이 힘겨워 투정부리는)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청각의 촉각화).[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 남편을 찾는 고생 속에 투정을 부렸던 어린 딸을 울면서 때리는 여인의 슬픈 한(恨)을 표현하고 있다. 청각의 촉각화]
섶벌(재래종의 꿀벌 / 유랑할 수밖에 없었던 민족의 현실을 대변한 시어)같이 나아간[돈을 벌기 위해 나아갔음을 의미] 지아비 기다려 십 년(十年)이 갔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十年)이 갔다. : 원래는 착실한 농부였을 법한 지아비가 갑자기 불어 닥친 금광 바람에 혹하여 벼락 부자가 될 꿈을 갖고 또는 생계 문제로 금광에 간 뒤 귀가하지 않은 지 십 년이 됐으므로 여인이 십 년 동안 과부 생활을 했음을 알 수 있고, 이로 미루어 크게 고생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시의 보편적인 민중고의 실상이고, 한(恨)을 짐작할 수 있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일제 강점기 가족 공동체의 상실과 파괴]
어린 딸은 도라지꽃(도라지꽃 : 청색으로 죽음의 차가운 이미지를 환기하고, 소설로 각색할 경우에는 복선으로 활용할 수 있는 소재임.)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 어린 딸도 죽어 도라지꽃이 많이 피어 있는 돌무덤에 묻혔다. 여인이 더욱 외로운 처지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산꿩도 섧게(산꿩도 섧게 : 감정이입의 대상 / 여인 또는 화자의 슬픔 이입)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 절[현실의 고통에서 초탈하기 위한 공간]의 마당귀(마당의 한 귀퉁이)에 여인이 머리 오리(머리카락의 가늘고 긴 가닥)가 눈물 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산 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 떨어진 날이 있었다. : 여인이 삭발하는 모습은 곧 여승이 되는 날이 되는 모습이다. 가족 공동체의 붕괴가 여승이 되게 한 것이다. 산꿩의 울음을 여인의 울음으로, 떨어지는 머리 오리를 여인의 눈물 방울로 대치시켜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이를 통하여 슬픔을 초월하는 여인의 정서를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눈물 방울 같이'는 '눈물 방울처럼', '눈물 방울과 더불어, 함께'의 뜻으로 해석되는 중의적 표현이다. / 여승이 된 여인은 한을 간직한 채 남은 생을 고행하며 살게 됨.]
'여승'에서는 시적 화자인 나와 시적 대상인 여승 사이의 거리가 어떻게 설정되어 있는지 찾아보고, 그러한 표현의 효과에 대해 말해 보자.
교수·학습 방법 : 이 활동은 학습목표와 관련하여 지도한다. 시적 화자가 자신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는가, 그런 태도를 취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어떠한 반응을 불러일으키는가 등의 보충 질문을 제시하여 학생들의 활동을 돕도록 한다.
예시 학생 활동 : 이 시에서는 시적 화자는 '나'이며, '나'는 여승, 즉 여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감정의 개입을 최대한 절제하고 관찰자의 입장을 취하면서 여승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소설에서의 1인칭 관찰자 시점처럼 시적 화자가 대상과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독자들과 여승의 거리를 가까워지게 된다. 즉 여승에 대한 '나'의 거리 두기는 독자들로 하여금 여승의 삶을 당대 민중의 보편적 삶의 모습으로 추체험하도록 하는 시적 장치가 되고 있다.
'여승'에서 시적 화자가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교수·학습 방법 : 시적 화자가 대상에 대해 객관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기는 하지만,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등의 표현을 통해 시적 화자의 의도를 추측해 볼 수 있다.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나'의 목소리가 드러나는 구절들과 정서를 나타내는 어휘들(울었다, 섧게, 슬픈 등)을 중심으로 시적 화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찾아보도록 유도한다.
예시 학생 활동 : 시적 화자는 오래 전에 금점판에서 옥수수를 팔던 여인이 어린 딸을 잃고 여승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주고 있다. 그러나 그런 여인을 바라보면서 '불경처럼 서러워졌다.'는 시적 화자의 고백을 통해 '나' 또한 그러한 삶의 현실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는 것을 추측해 볼 수 있다. 머리를 깎는 여인의 모습아 서럽고 슬퍼 보인 것도 그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시에서 시적 화자가 여인의 삶을 통해 궁극적으로 일본 강점기의 어두운 현실 속에서 살아가던 민중들의 힘겨운 삶을 보여 주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이해와 감상
4연 12행의 비교적 짧은 시 속에 한 많은 여자의 일생이 사실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형태상 시적 화자인 '나'가 시적 대상인 '여승'의 삶을 서술하고 있지만, 이 시의 주된 내용은 시적 화자와는 거리가 유지되고 있는 여승을 중심으로 한 어느 가족의 삶이다.
이 시의 주인공은 남편과 아내, 그리고 딸아이이다. 이들은 농사를 짓고 살다가, 남편이 돈을 벌기 위해 금광의 광부로 간 후 소식이 끊겼고, 아내는 옥수수 행상을 하면서 남편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남편은 찾지도 못한 채 딸을 돌무덤에 묻었고, 자신은 머리를 깎고 여승이 되었다.
이 시는 이러한 이야기를 통하여 일제 강점기 농촌의 몰락과 '섶벌'처럼 떠날 수밖에 없었던 민족의 현실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특히 '가을밤같이 차게' 울면서 자식을 묻은 어머니의 슬픔을 형상화한 것이나, '도라지꽃'으로 비유된 죽은 아이의 형상은 돋보이는 표현이다.
이해와 감상2
이 작품은 짧은 형식 속에 한 가족 나아가 한 시대의 우리 민족의 삶이 농축되어 있는 '이야기시'이다. 따라서 이 작품의 골격을 이루고 있는 것은 한 여인이 겪어 온 서사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벌처럼 처자를 먹여 살리던 한 가정의 가장이 일자리를 찾아 금광으로 떠난다. 그러나 가장은 10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여인은 그를 찾아 나이 어린 딸아이를 데리고 옥수수 행상을 하며 이곳저곳 금광을 전전한다. 고생을 못 견뎌 투정을 부리던 딸을 때리며 여인은 함께 울기도 한다. 그러다가 객지에서 딸아이마저 죽게 되자 끝내 삭발을 하고 여승이 된 여인은 산나물과 불경을 만지며 여생을 보낸다.
그런데 이 시는 모두 4연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시간 구조가 '현재(1연)→ 과거(2,3,4연)'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2,3,4연은 여인이 여승이 된 유래담인데 화자인 '나'는 그녀가 옥수수 행상을 할 때 이미 그녀에게서 옥수수를 산 경험이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그런데 1연에서 그 여인이 여승이 된 후에 재회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이미 늙었고 쓸쓸한 낯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화자로 하여금 동일한 정서에 빠지게 한다.
절제된 시어와 직유의 표현 기법으로 일제 강점기의 민족 현실을 전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섶벌'처럼 일터를 찾아 나간 지아비, '가을밤같이 차게' 울면서 자식을 때리는 어미, '도라지 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간 어린 딸, 온 가족을 잃고 여승이 될 수밖에 없었던 한 여인― 산꿩의 울음이 곧 여인의 울음이요, 여인의 머리오리가 곧 눈물인 것이다.
결국 이 작품은 한 가족이 일제하의 궁핍한 생활에 의해 와해되고 그 결과 여인이 여승이 되었다는 서사를 골격으로 화자의 쓸쓸한 감정을 나타낸 '이야기시'라고 할 수 있다.
이해와 감상3
이 시는 1930년대 후반 민족 문학의 성과로 꼽히는 작품으로, 백석의 초기 시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이다. 백석의 초기 시는 풍경이나 사물에 대한 객관적인 묘사를 보여 주고 있는데 이 시에서도 한 여인의 삶에 대한, 감정이 절제된 묘사가 돋보인다. 시적 화자의 절제된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이 시에서는 한 여인의 비극적이 삶에 대한 애처로운 마음이 담겨 있다. 이는 식민지 시대 우리 민족의 처지를 바라보는 시인의 안타까운 시선에서 되는 것이기도 하다.
4연 12행의 비교적인 짧은 시속에 한 여자의 일생이 사실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시적 화자인 '나'가 시적 대상인 '여승'의 삶을 서술하고 있지만, 이 시의 주된 내용은 시적 화자와는 거리가 있는 여승을 중심으로 한 어느 가족의 삶이다. 1연에서 시적 화자는 한 여승과의 만남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인을 산 속의 취나물에 비유함으로써 신은 세속과 인연을 끊은 여인의 모습을 감각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쓸쓸한 낯이 옛날처럼 늙었다.'라는 표현은 여인이 아직도 아팠던 과거를 잊지 못하고 그 번뇌를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2연∼4연에서 시적 화자는 절에 들어오기까지의 여인의 삶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언젠가 평안도 어느 금점판에서 안색이 파리한 여인에게 옥수수를 샀던 일이 있었다. 그때 파리한 안색의 그녀는 울며 보채는 어린 딸을 때리며 가을밤처럼 차게 울었다(2연). 여인의 지아비는 집을 나간지 10년이 넘었고, 지아비를 기다리며 힘겹게 사는 동안 어린 딸은 죽어 버리고 말았다(3연). 그리고 그 여인은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 머리를 깎고 여승이 되었다(4연).
이 시는 이러한 이야기를 통하여 일제 강점기 농촌의 몰락과 '섶벌'처럼 떠날 수밖에 없었던 민족의 현실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가지취'의 냄새가 나는 여인의 모습에서 '불경(佛經)처럼' 서러움을 느끼는 시적 화자도 결국 비슷한 처지라는 것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출처 : 김병국 외 4인저 한국교육미디어 문학)
심화 자료
시상의 전개
일제 강점기에 어려운 삶을 살았던 한 여인의 삶을 축약하여 보여 준 시다. 각 연이 시간성을 내포하고 있으나 시간적 순서에 따라 배열되지 않았다. 소설의 플롯같이 배열되었다.
1연은 여승이 된 현재의 모습을 그렸다. 합장을 한 여승은 이미 속세를 잊은 듯 불경과 산나물에 흠씬 젖어 있다.
2연은 돈을 벌기 위해 집을 떠나 귀가하지 않는 남편을 찾으러 금점판에서 옥수수 행상을 하는 여인과의 첫 만남을 그렸다.
3연은 광부로 나간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딸은 죽어 더욱 외로운 처지가 된 여인의 삶을 그렸다.
4연은 한 많은 여인이 여승이 되는 모습을 그렸다.
내용을 정리하면 1연은 여승이 된 현재의 모습을, 2, 3, 4연은 여승이 되기까지 여인의 삶의 궤적을 더듬은 것이다. 따라서 역순행적 구성 방식을 취한 시임을 알 수 있다.
서술시에 대하여
근대 산업 사회가 형성되면서 이에 부응하는 예술 사조로 리얼리즘이 부각되기 시작했으며, 문학의 장르 중 소설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이와 같은 이유는 소설이 대상의 객관적 총체성을 잘 반영함에 있어 다른 장르에서 보여 줄 수 없는 객관성과 총체성을 보여 준다는 점이다. 이 같은 장르상의 특징에서 시 장르는, 고대 신성 사회의 절대적 과거에서 신성불가침의 전통을 서사적인 거리를 두고 청중·화자가 서사의 세계와 격리되었던 서사시의 세계로 복귀될 수 없었으며, 나름대로의 서정 장르의 영역을 확대하는 작업과 장르로써 살아남기 위한 노력을 보이게 된다.
이 같은 노력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작업의 하나가 낭만적 정조를 띤 근대 장편 서사시의 시도이며, 또 하나가 단편의 서정 양식에 집약된 효과를 지닌 언어를 구사하여 사회를 반영하는 노력이다. 우리 근대시사에서 서술시의 출현은 시 영역의 장르 확산 노력의 일환으로 시도되었으며, 1920년대 초반의 감상적인 시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하였다. 이러한 서술시는 이야기나 사건을 통해 시적 화자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이나 세계를 독자에게 보여 주는 형태를 띠고 있다. 이런 시적 경향은 서사 민요나 사설 시조 등 민중적인 삶을 표상하는 전통적인 시가의 내적 구조와 일맥 상통하는 것이었다.
1930년대는 시문학사에서 임화를 비롯한 여러 시인들에 의해 서술시가 가장 활발하게 제작된 시기이다. 이 시기에 서술시를 쓴 사람들은 카프(KAPF)에 관련되었거나 카프 작가들과 영향 관계에 있던 시인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또 1930년대 후반 카프해산 후에는 동인지 활동이나 시집 간행을 통하여 일부의 시인들이 서술시 제작에 참여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들 서술시는 나름의 사건을 보여 주거나 이야기 구조를 통하여 서정의 세계를 펼쳐 보였다. 카프가 해산된 1935년 이후에는 백석, 이용악, 안용만 등의 시인들이 서정성을 내포하는 서술시를 시도했다. 이러한 시도는 해방 직후 '조선 문학가 동맹' 계열의 시인들을 거쳐, 1970년대 이후 중시를 썼던 신경림, 이시영, 최두석 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출처 : 김병국 외 4인저 한국교육미디어 문학)
백석의 시 세계
백석 시의 전 작품을 놓고 볼 때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시어와 시 양식상의 특질이다. 그의 시는 거의 대부분이 토착어로 이루어져 있다. 그의 전작품에서 한자어나 그 밖의 외래어의 사용은 극히 제한되어 있으며 대부분이 토착어로 표출되고 있다. 그런데 토착어로 일관되어 있는 그의 시에서 무엇보다도 주목되는 것은 평북 방언들이 노골적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 평북 방언들은 매우 깊이 있고 다양하게 구사되고 있다. 이처럼 그의 시에서 방언이 완강하게 표출되고 있는 점은, 영문학을 전공했고 신문사의 편집직을 지냈다는 그의 전기적 사실을 상기해 볼 때 다분히 시작상 의도적인 것이었다고 보아진다.
다음으로 그의 시는 전통적인 서정 양식의 미적 구조에서 이탈하여 서사 양식의 미적 구조를 수용하는 독특한 양식을 지니고 있다. 소위 '서시지향적 시'로 지칭될 수 있는 이러한 시적 양식은 1920년대 김동환의 '국경의 밤'과 백석과 동시대의 시인인 이용악의 일부 시편들과 일정한 맥락을 형성하면서 서양식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백석 시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할 것은, 그의 전 작품을 통시적으로 놓고 볼 때, 이상의 내면적 특질을 포함한 총체적인 작품 세계가 시기적으로 구획지을 만한 특별한 변화상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개의 경우 한 작가의 작품세계는 시기적으로 변화의 과정을 보이기 마련인데, 백석 시는 6년 남짓한 짧은 시작기간 안에 몇 가지의 주제가 대립과 반복의 양상을 보이면서 공존하고 있다.
백석 시의 총체적인 작품세계는 그이 개인적 삶과 관련지어 볼 때, 일단 두 가지의 성향으로 대별된다고 볼 수 있다. 즉 방랑적인 삶의 체험 또는 기행의 체험 속에서 고향 의식을 드러내는 작품들과, 자신이 몸담았던 기행지의 정경과 객수 등을 담고 있는 작품들로 나눠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되어야 할 것은 고향의식을 드러내는 작품들은 다시 두 가지 성향으로 나눠진다는 점이다. 첫째는 유년의 시적 화자가 자신이 생장했던 고향 마을에서 벌어지는 토속적인 한국인의 삶의 모습을 추체험 형식으로 진술한 작품들과, 둘째는 그와 같은 고향마을을 떠나온 데서 비롯되는 그리움이 진술되는 작품들이다. 즉 전자는 '고향' 그 자체를 시적 제재로 삼고 있는 반면 후자는 상실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하고 있다. 이상 크게 몇 갈래로 구분해 본 그의 작품세계는 연대기적 순서에 따라 계기(契機) : 어떤 일이 일어나거나 변화하도록 만드는 결정적인 원인이나 기회)적으로 전개되기보다는 전 시작기간 안에서 대립, 반복하면서 공존하고 있다. - 고형진. '백석 시 연구' . 고형진 편 <백석> (새미, 1996)
백석의 시 특징
백석의 시 세계 백석의 시 세계의 주인공은 공동체의 품속에 깊이 잠겨 있다. 그리고 자신의 고향 세계에 잠겨 있는 만큼 그러한 공동체적 세계로부터 멀어져 있는 현실의 자신과 모순되어 있는 상태를 심화시킨다. 바로 이 모순이야말로 백석의 시를 의미 있게 만드는 창조적 힘인 것이다.
'고향'은 타관에서 떠도는 자의 절절한 향수를 느끼게 한다. 백석의 향수는 단지 고향의 풍물이나 인정 세태를 회상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시적 소재들은 보다 깊고도 지속적인 고향의 삶의 역사와 관련을 맺으려 할 때에만 선택된다. 풍속이나 이야기로서의 설화가 시 속에서 자주 언급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풍속과 이야기야말로 유랑자에게 결핍되어 있는 것이면서 동시에 바로 그에게 발견되는 것이기도 하다. 유랑자에게 있어서 가장 그리워지는 대상은 가족공동체인데, 백석은 유랑의 여로 속에서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고향의 공동체적 삶에 대한 향수를 떠올리고 있다. <신범순, '백석의 공동체적 신화와 유랑의 의미'에서>
'여승'에서의 시적 화자의 위치와 그 효과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한 많은 여인의 일생사를 들려주는 서사적 형식으로 시점은 관찰자 시점을 취하고 있다. 부분적으로 시적 화자의 감정이 직서적으로 노출되어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여인이 겪은 사건들을 중간에서 전달해 주는 듯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 즉 간결한 문장으로 감정을 절제하며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사실주의 소설들이 주로 취하는 방식으로 고발이나 폭로의 작품에 적합하며, 비극적이고 부조리한 모습을 직접 독자에게 보여주는 듯한 효과가 있다. 즉 중간에서 매개하는 사람의 해석이나 개입을 차단함으로써 독자가 직접 사건 자체를 접하는 듯한 효과를 가져다 주는 것이다.
金再禁과 1930년대 조선의 '金'과 '金鑛'
1930년대의 黃金狂은 최창학의 삼성금광이나 방응모의 교동금광으로 대표되는 광산지대, 혹은 [黃金狂時代]의 '장쇠'나 [金따는 콩밧](1935)의 '영식'이 서 있었던 농촌 사회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황금광시대'의 열광은 사실상 경성시내 한 복판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1930년대 도시민의 일상에 침입한 '황금의 열기'를 박태원은 다음과 같이 옮겨 놓았다.
두 명의 사내가 서 있었다. 낡은 파나마에 모시두루마기 노랑 구두를 신고, 그리고 손에 조그만 보따리 하나도 들지 않은 그들을, 구보는, 확신을 가져 무직자라고 단정한다. 그리고 이 시대의 무직자들은, 거의 다 금광 브로커에 틀림없었다. 구보는 새삼스러이 대합실 안팎을 둘러본다. 그러한 인물들은, 이곳에도 저곳에도 눈에 띄었다.
黃金狂時代-
저도 모를 사이에 구보의 입술을 무거운 한숨이 새어 나왔다. 황금을 찾아, 황금을 찾아, 그것도 역시 숨김 없는 인생의, 분명히, 일면이다. 그것은 적어도, 한 손에 短杖과 또 한 손에 공책을 들고, 목적 없이 거리로 나온 자기보다는 좀더 진실한 인생이었을지도 모른다. 시내에 산재한 무수한 鑛務所. 인지대 백 원. 열람비 오 원. 수수료 십 원. 地圖代 십팔 전……출원 등록된 광구, 조선 全土의 칠 할. 시시각각으로 사람들은 졸부가 되고, 또 몰락하여 갔다. 황금광시대. 그들 중에는 평론가와 시인, 이러한 문인들조차 끼여 있었다. 구보는 일찍이 창작을 위하여 그의 벗의 광산에 가보고 싶다 생각하였다. 사람들의 射倖心, 황금의 매력, 그러한 것들을 구보는 보고, 느끼고, 하고 싶었다. 그러나, 고도의 금광열은, 오히려, 총독부 청사, 동측 최고층, 鑛務課 열람실에서 볼 수 있었다……
근대도시를 산책하던 구보는 '금광 브로커들'로 가득 찬 대합실, 시내에 산재한 무수한 광무소에서 황금광시대를 체험했다. 이 시대의 무직자들은 거의 다 금광 브로커였고, 조선 전국토의 70%가 출원된 금광이었으며, 문인들조차 그 열기에 들떠 있었다. 그러나 위의 인용문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황금 탐사자가 '한 손에 단장과 또 한 손에 공책'을 든 자기보다는 진실한 인생이라는 인식이나 고도의 금광열은 광무소 열람실에서 볼 수 있었다는 지적에서 은밀하게 드러나는 금광과 근대적 경제제도와의 연결고리이다.
단장과 공책을 양손에 든 도시 거리의 산책자 구보는 근대적 풍광에 도취되거나, 그것을 환멸할 수는 있지만 그 속에 뛰어들어 그 세계의 일부가 되지는 못한다. 이에 반해 황금을 찾아 떠난 황금 탐색자들은 근대적 산업으로 공인 받았던 産金業에 뛰어든 엄연한 근대사회의 주체였다. 이미 근대사회의 제도화된 욕망의 대상으로 자리했던 '금'을 향한 열망은 그것에 대한 욕망을 은밀히 감추고 있는 시니컬한 시선보다는 진실한 것일 수 있었다. '진실한 인생'과 '진실하지 않은 인생'의 차이를 이러한 참여자와 관조자의 차이로 볼 수 있는 것이다.
1930년대 황금 열기는 당시 시민들의 사치나 허영심으로는 좀처럼 설명되지 않는다. 이 시기 금은 언제나 있었던 초역사적·보편적 욕망이 아니라 1930년대 식 근대사회 유지에 필수적이었던, 산업화·제도화된 욕망의 대상이었다. 그들의 황금 탐사가 단지 개인적인 사행심이나 탐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면, 사회 전체의 광적인 분위기로 확대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욕망이 집단적 광기의 형태로 전면적으로 폭발하려면 당시 지배 세력의 현실적 필요에서 비롯된 이데올로기적·정책적 지원이나 묵인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러한 의미에서 경성 시내 한 복판, 총독부 청사 광무과 열람실에서 불고 있는 '금광열'은 당시 국가적 차원에서 정립했던 근대적 경제제도 하에서의 '금'이나 '금광'에 대한 인식 없이는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다.
1930년대 골드 러시를 촉발시킨 사회적 동인 중 직접적인 계기는 금값 폭등이었다.
1) 金價는 騰勢의 沸騰이 되고 있다. 再昨年 十一月頃에는 十一圓을 하고 昨年 十月頃에는 十一圓五十錢이나 하고 今年 初에는 十三圓五十錢이라는 굉장한 가격을 말하게 되었다.
2) 금갑이 하늘을 파충하게 올러가고 잇는 지금 금 파내기만 하면 큰 재수가 잇을 거갓헛다.
3) 그런데 그 때도 한참 금값이 오르고 따라서 금광일이 도도할 무렵이라 명호도 부지 중 허욕이 나기 시작했다.
금값은 1930년대를 걸쳐 상승 일변도로 치달았으며, 특히 1934년을 전후로 하여 폭등 양상을 보였다. 금값이 폭등한 것은 결국 금에 대한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터무니없이 모자란 데에 원인이 있었는데, 이는 1930년대 일본 경제 체제 내의 전반적인 문제가 만성적인 금 부족 현상으로 집약되어 나타난 것이었다. (출처 : 전봉관의 1930년대 金鑛 풍경과 '黃金狂時代'의 문학)
박태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문장사, 1938)
양갑석, [黃金狂과 大密輸出事件 이야기], <신동아>, 1934. 9
방인희, [黃金狂時代], <조선중앙일보>, 1934. 1. 8
이기영, [적막], <조광 9>, 1936. 7.